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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압구정시의 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1935
한자 御製狎鷗亭詩序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20년 - 서거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88년 - 서거정 사망
배경 지역 압구정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지도보기
성격 한문산문
작가 서거정(徐居正)[1420~1488]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성종 때 어제압구정시에 붙인 서문.

[개설]

「어제압구정시의 서」서거정(徐居正)이 조선 성종(成宗) 때 「어제압구정시(御製狎鷗亭詩)」에 붙인 서문으로, 그의 문집 『사가시집(四佳詩集)』 제5권에 수록되어 있다. 압구정(鴨鷗亭)은 조선조 세조에서 성종 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했던 한명회(韓明澮)가 만년에 두모포(豆毛浦) 남쪽 언덕에 지어 여생을 보냈던 정자이다. 이 때 성종(成宗)이 친히 「압구정시(鴨鷗亭詩)」를 지어 내렸는데, 조정의 여러 문사들이 어제(御製)에 화운(和韻)하여 수백 편의 시를 지은 후 서거정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이 글이 바로 문사들의 요청으로 지어진 서(序)이다. 현재 강남구에는 이 정자의 이름을 붙인 압구정동이 있는데, 강남개발로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면서 지대를 높이고 한강제방을 쌓으면서 원래 정자의 터는 사라졌다.

[구성]

「어제압구정시의 서」는 먼저 「어제압구정시(御製狎鷗亭詩)」에 서문을 붙이게 된 배경을 소개하고 이어 서문을 지었다. 당나라 하지장(賀知章)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려 하자 당 현종이 친히 시를 지어 하사한 고사를 인용하면서, 한명회압구정을 짓고 여생을 보내려 하자 성종이 친히 근체시와 절구를 지어 하사한 일을 소개하였다. 조정의 사대부들이 이 일을 아름답게 여겨 화운하여 시문을 지었는데 시가 한 권에 가득차자 서거정에게 서문을 부탁한 배경이 잘 나타나 있다. 서문에는 공을 이루고 물러난 자와 이에 친히 시를 써서 내린 임금의 아름다운 뜻을 기리는 의미가 잘 표현되어 있다.

[내용]

일찍이 당(唐)나라 역사에서 비서감(秘書監) 하지장(賀知章)이 늙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려 하자 현종이 “감호(鑑湖)를 하사하고 친히 오언시(五言詩) 사운(四韻)을 지어 하사하였다.” 라는 내용을 읽고, 하감(賀監)이 출처에 밝았음을 알았고 명황[현종]이 신하를 후대하였음을 알았다. 지금 상당(上黨) 한공(韓公)은 세조(世祖)께서 중흥을 이룩하셨을 때의 원훈(元勳)으로 네 차례나 공신(功臣)이 되고 세 차례나 암랑(巖廊)[의정부]에 들어갔으나 일찍이 권세와 명예가 차고 넘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여 자신의 정자를 ‘압구(狎鷗)’라 편액(扁額)하고, 어느 날 한수(漢水)의 물가에 터를 잡아 정자를 짓고자 하였다. 상이 이 말을 듣고 윤허하시는 한편 근체시와 절구(絶句)를 각각 두 수씩 지어 손수 써서 하사하셨다. 이에 조정의 사대부들이 모두 말하기를,

“하지장이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기를 고하면서 도사(道士)가 되기를 청하였으니 그의 행동거지가 모두 바름을 얻은 것은 아니었고, 명황은 처음에는 명철하였으나 나중에는 혼암한 군주였으니 신하에 대한 대우 또한 모두 마땅함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임금과 신하가 서로 허여한 것과 사군자의 공명(功名)에 따른 출처가 그나마 볼만한 점이 있었던 까닭에 당시에 그 미덕을 칭송하였고 후세 사람들이 그 일을 흠모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리나라의 성스러운 군주와 훌륭한 재상이 보여 준 예우(禮遇)의 정성과 진퇴(進退)의 기미가 모두 바름을 얻은 경우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게다가 감호는 도성과 천백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반해 압구정은 도성 남쪽의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상공(相公)이 조정을 나와 돌아갈 때나 성상이 때로 불러 접견하실 때에 강호(江湖)와 궁궐이 한걸음이면 갈 수 있는 지척에 있어서 또한 하지장이 벼슬을 그만두고 떠나가 아예 돌아오지 않은 경우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따라서 이 일은 마땅히 시문(詩文)을 지어 노래해서 그 성대한 아름다움을 널리 알려야 한다.”

하고, 시가 한 권에 가득 차자, 나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가만히 생각건대, 하늘과 땅의 문(文)이 있고 성인의 문이 있으니, 해와 달과 별이 하늘의 문이나 경성(景星)과 경운(卿雲)이 하늘의 문 가운데 가장 지극한 것이고, 산천과 초목이 땅의 문이나 가화(嘉禾)와 영지(靈芝)가 땅의 문 가운데 가장 지극한 것이며, 예악(禮樂)과 문물(文物)과 정교(政敎)와 호령(號令) 어느 것 하나 성인의 문 아닌 것이 없으나 임금이 친히 쓴 신장(宸章)과 어찰(御札)이야말로 성인의 문 가운데 가장 지극한 것이다.

신이 삼가 성상께서 지으신 이 시편을 보니, 글은 『주서(周書)』의 고(誥)와 『상서(商書)』「반경(盤庚)」의 글이고, 글자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글자이며, 참으로 큰 말씀과 참으로 전일(專一)한 마음은 바로 순 임금의 하늘의 명을 계칙한 노래[勑天之謌]이다. 이에 조정의 신하들이 모두 시가(詩歌)를 지어 낭랑히 읊어 아뢰니, 순 임금 조정의 고요(皐陶)가 시를 지어 화답한 기상[賡載氣象]을 오늘날 또다시 볼 수 있었다.

지금 감히 하지장의 고사를 멀리 끌어다 견주려는 것은 아니나 일이란 본디 자취는 같으나 속 내용은 같지 않으며, 이름은 같으나 마음은 같지 않은 경우가 있다. 상공의 당당하고 훌륭한 공훈과 업적을 지니고도 겸손하여 공을 자처하지 않고 갈매기를 벗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으니, 그 정충(精忠)과 아취(雅趣)는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위공(魏公)과 어깨를 견줄 만하며, 공을 이루고 나서 물러난 이윤(伊尹)의 아름다운 뜻을 깊이 얻었다고 하겠다. 구구한 하 노인이야 또한 입에 올릴 가치가 있겠는가. 그러나 상공의 공명과 사업의 성대함이나 출처와 진퇴의 마음이 성상께서 지으신 시편으로 인하여 더 한층 밝게 드러났으니, 장차 태사씨(太史氏)가 대서특필하여 찬미할 것이다. 어찌 다시 내가 덧붙일 필요가 있겠는가. 공은 힘써 처음과 끝을 온전히 보전하도록 힘쓰소서.]

[특징]

「어제압구정시의 서」는 당나라 하지장의 고사를 끌어와 임금과 신하의 아름다운 뜻을 잘 표현하였다.

[의의와 평가]

서거정은 조선조 세종(世宗)에서 성종(成宗)까지 6명의 임금을 섬기며 45년간 조정에 몸담고 23년간 문형(文衡)을 관장하면서 당대 학문의 흐름을 이끌어 갔던 인물이다. 성종이 친히 압구정시를 짓자 여러 문사들이 화운하여 시를 짓고 그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어제압구정시의 서」는 당나라 하지장의 고사를 끌어와 임금과 신하의 아름다운 뜻을 잘 표현한 글이다.

[참고문헌]
  • 한국고전종합DB(http://www.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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