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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서울 도시기본계획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693
한자 1966年-都市基本計劃
이칭/별칭 대서울 도시기본계획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설정임

[정의]

강남 일대[영동지구]를 서울의 3개 주요 부도심의 하나로 지정하여 업무 및 상업지역으로 개발하고자 했던 계획.

[우리나라 도시기본계획의 도입]

서울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도시계획이 수립된 것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제로 시행되지 못했다. 1934년에 이르러서 「조선시가지계획령」이 제정됨으로서 경성부는 1936년에 ‘경성시가지계획’을 수립하였으며, 이 계획이 우리나라 근대 도시계획의 출발점이 되었다.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1959년을 목표로 하여 당시의 경성부 전역 35.1㎢와 주변지역을 포함한 총 108.8㎢를 계획구역으로 설정하였으며, 계획 인구를 70만으로 설정하였다. 또 용도지역으로서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그리고 유보지역인 미지정지역을 지정하였으며, 도로의 계획도 오늘날과 같이 대로·중로·소로 등 도로폭 위주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강남에 해당하는 한강 이남은 당시 경성부에 포함되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의 대상으로 설정되지 못하였다.

[도시기본계획의 수립]

8.15광복 이후 극도로 혼란했던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도시계획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한 채 6.25전쟁을 맞았다. 따라서 그 당시 도시계획은 6.25전쟁으로 인해 폐허화된 시가지 복구를 위한 전재복구사업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의 손에 의해 수립된 최초의 계획은 피난시절에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1951년에 수립한 전재복구를 위한 ‘서울도시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1934년의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바탕을 둔 것으로, 주 내용은 6.25전쟁으로 파괴된 지구에 대한 토지구획 정리사업과 도로확장계획, 용도지역계획 등이었으며, 1952년 3월 25일에 결정·고시되었다. 이 또한 오늘날의 여의도를 포함한 한강 이남의 일부지역을 포함하고는 있으나 현재의 강남 일대는 당시 수도 서울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지 못하였다.

[강남 일대 도시기본계획의 수립 배경]

강남 일대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도시기본계획인 수립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서울 권역이 확대되어 강남 일대를 포함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국가차원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수립·시행되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가 국가성장의 중추역할을 하였으며, 대도시로 인구가 급격히 집중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들어서서 서울의 도시계획은 도시기본계획, 즉 마스터플랜의 수립이 시작된다. 도시기본계획의 수립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도시의 발전방향과 미래상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었다.

1963년에 와서 서울 인구는 300만명을 넘어서게 되었고, 도시계획구역도 713.24㎢로 대폭 확대되었다. 이러한 서울의 성장을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인구 500만명이 거주하는 현대적 도시를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수립, 발표되었다.

[1966년 도시기본계획의 주요 내용]

1966년 서울특별시는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에 의뢰하여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계획은 12년을 2기로 나누어, 각 1기마다 5개년 계획과 그 중간에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었으며, 도시기본계획에서는 기능분산을 위해 입법부를 남서울에, 사법부를 영등포에, 행정부를 용산에 입지하도록 제안하였다. 행정의 중심부인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부로 하여 대통령관저 및 직속기관을 배치하도록 하였다. 또한 강남을 포함한 영동지구는 서울의 3개 주요 부도심의 하나로 지정되어 업무 및 상업지역으로 분류되었다.

이는 1985년을 목표년도로 하는 종합적 장기계획으로 이전의 지역지구제와 가로망 중심의 물적 계획에 비해 형식면에서 사회경제부문을 포함한 종합계획의 성격을 지녔으며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공개되는 계획이었다.

[1966년 도시기본계획의 결과 및 성과]

1966년 도시기본계획은 서울의 공간구조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가로망 및 토지이용계획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5년이 채 안되어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1985년 목표 인구 500만명이 1970년 7월에 이미 넘어서게 되고, 아울러 수도권 인구집중억제의 강화로 인한 제반여건의 변화를 부분적으로 보완하는 수정계획이 1972년에 수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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