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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85
한자 漢巖
이칭/별칭 방중원(方重遠)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강호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6년연표보기 - 한암선사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97년 - 한암선사 장안사에서 출가
활동 시기/일시 1905년 - 한암선사 통도사 내원선원 조실 지냄
활동 시기/일시 1941년 - 한암선사 조계종 초대 종정 추대
몰년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한암선사 입적
출생지 한암선사 출생지 - 강원도 화천군 김화
학교|수학지 한암선사 출가지 - 금강산 장안사
학교|수학지 한암선사 수학지 - 경상북도 김천시 청암사
학교|수학지 한암선사 수도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
활동지 한암선사 활동지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활동지 한암선사 활동지 - 평안도 맹산 우두암
활동지 한암선사 활동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73 봉은사지도보기
한암선사 비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
부도 한암선사 부도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원사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통도사 내원선원 조실|봉은사 조실|조계종 초대 종정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에서 활동했던 승려.

[개설]

한암은 9세때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배우던 중 의문을 품었고, 1897년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에서 출가하여 행름선사(行凜禪師)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금강산 신계사(神溪寺)의 보운강회(普雲講會)에서 공부했으며 1899년(광무 3) 가을 김천 청암사(靑巖寺) 수도암에서 경허성우(鏡虛惺牛)[1849~1912]에게서 수학하던 중 경허가 알려준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를 듣고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고, 경허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이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론을 하였다. 한암은 근대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의 법통을 이어받아 만공(滿空)과 함께 중흥의 전성시대를 구가한 인물로 평가된다.

[가계]

한암의 속명은 방중원(方重遠), 본관은 온양이다. 1876년(고종 13) 3월 27일 강원도 화천군 김화에서 아버지 방기순(方箕淳)과 어머니 길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1905년 봄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의 조실이 되어 후학들을 지도했고, 1910년 봄 평안도 맹산 우두암(牛頭庵)에 들어가 홀로 보임(保任)에 힘쓰던 중 대오(大悟)하였다. 이후 곳곳에서 선풍을 날렸다. 1925년 봉은사 조실로 있다가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上院寺)로 들어가 이후 27년 동안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1941년 조계종이 출범되면서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어 1945년까지 조계종을 이끌었다. 1951년 한국전쟁 때에는 국군이 적의 소굴이 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오대산 전 사찰을 소각시키고 상원사도 불태우려 하자 법당에 좌정하고 앉아 상원사가 폐허가 되는 것을 막았다. 경허의 전법제자이자 뛰어난 선풍을 가진 근현대의 선사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다 1951년 2월 14일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한암보조지눌의 『수심결(修心訣)』을 읽던 중 첫 번째 깨달음을 경험하는 등 보조지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사교입선(捨敎入禪), 자교명종(資敎明宗), 돈오점수(頓悟漸修)가 그의 선사상의 특징이다. 저서로는 『일발록(一鉢錄)』 한 권이 있었으나 1947년 봄 상원사에 불이 났을 때 없어졌고, 「선호경허화상행장(先呼鏡虛和尙行狀)」과 경봉(鏡峰)과 주고받은 편지 32편이 전해진다. 1990년 한암이 남긴 편지와 잡지에 수록된 글을 모아 『한암집』이 출판되었다.

[묘소]

1959년 3월 제자들에 의해 상원사에 부도와 비가 세워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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