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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55
한자 尹堦
이칭/별칭 태승(泰升),하곡(霞谷),익정(翼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17년 - 윤계 정언 제수
출생 시기/일시 1622년(광해군 14)연표보기 - 윤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증광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65년 - 윤계 예조좌랑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75년 - 윤계 황해도관찰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75년 - 윤계 영광 유배
활동 시기/일시 1680년 - 윤계 해배
활동 시기/일시 1680년 - 윤계 동부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6년 - 윤계 평안도관찰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7년 - 윤계 한성부판윤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8년 - 윤계 광주유수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89년 - 윤계 강진 유배
몰년 시기/일시 1692년(숙종 18)연표보기 - 윤계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4년연표보기 - 신원
유배|이배지 윤계 유배 - 영광
유배|이배지 윤계 유배 - 전라남도 강진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해평(海平)
대표 관직 예조 좌랑|정언|황해도관찰사|동부승지|평안도관찰사|한성부판윤|광주유수|공조 판서

[정의]

1688년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 일대를 관할하는 광주유수를 지낸 문신.

[가계]

윤계의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이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으로, 첨정 윤면지(尹勉之)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1622년(광해군 14)에 태어나 1692년(숙종 18)에 사망하였다. 『숙종실록』에는 “대가(大家)의 자손으로 재능과 역량이 있고 생각이 깊었으며 젊은 무리들이 따로따로 갈라지는 초기를 당해 유독 야합(野合)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활동 사항]

윤계는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출사한 이후 직강(直講)·도사(都事)·전적(典籍)·감찰(監察)·문학(文學)·지평(持平)·정언(正言) 등 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후 내직으로는 동부승지(同副承旨)·대사간(大司諫)·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좌참찬(左參贊)·공조판서(工曹判書)·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등을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는 제주목사·함경감사·황해도관찰사·평안도관찰사·강화유수 등을 지냈다. 1665년 예조좌랑, 1671년 정언, 1675년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는데 이때 영광으로 유배되었다가 1680년에 풀려나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686년 평안도관찰사, 1687년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1688년 광주유수(廣州留守)로 임명되어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포함한 광주 지역을 다스렸다.

그 이듬해 정권이 서인(西人)에서 남인(南人)으로 바뀌면서 강진으로 유배되어 배소에서 사망하였다. 숙종 대는 서인과 남인 사이의 정권 다툼이 일어나 여러 차례 환국(換局)이 발생하였으며, 윤계는 지나치게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는 않았지만 송시열계의 인물로 지목되어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유배되었다. 1692년 강진에서 죽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하곡집(霞谷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694년 신원(伸寃)되었고 시호는 익정(翼正)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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