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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34
한자 權徵
이칭/별칭 이원(而遠),송암(松菴),정익(貞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38년연표보기 - 권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62년 - 권징 별시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67년 - 권징 주서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86년 - 권징 형조참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589년 - 권징 병조판서 제수
몰년 시기/일시 1598년연표보기 - 권징 사망
묘소|단소 권징 묘소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청계산 자락 산57-4 안동 권씨 묘역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
대표 관직 주서|형조참판|병조판서|영의정 추증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보수한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 자는 이원(而遠), 호는 송암(松菴)으로 찬성사(贊成事) 권근(權近)의 후손이다. 사직(司直) 권굉(權硡)의 아들이며 부인은 현감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1538년(중종 33)에 출생하여 1598년(선조 31)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권징은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閱), 1567년에 주서(注書)가 되고 이후 병조좌랑(兵曹 佐郞)·춘추관 기사관(春秋館記事官)·동부승지(同副 承旨)·형조참의(刑曹 參議) 등을 역임하였다. 1586년(선조 19) 형조참판(刑曹 參判)을 거쳐 충청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589년에 병조판서(兵曹判書)로 승진하였다가 다시 평안도 관찰사로 나갔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경기도 관찰사에 임명되어 임진강의 방어에 최선을 다했으나 패배하였고, 권율(權慄)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해 왜병과 싸웠다. 서울을 탈환한 후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되어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선릉(宣凌)과 정릉(靖凌)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파헤쳐진 것을 보수하였다.

[묘소]

『중정남한지』에 의하면 묘소가 경기도 광주 대왕면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에 있었으나 후에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안동 권씨 묘역으로 옮겨졌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익(貞翼)이며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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