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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28
한자 李厚源
이칭/별칭 사심(士深),우재(迂齋),충정(忠貞)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8년연표보기 - 이후원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3년 - 이후원 정사공신 책봉
활동 시기/일시 1627년 - 이후원 총융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35년 - 이후원 증광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39년 - 이후원 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42년 - 이후원 대사간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3년 - 이후원 도승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5년 - 이후원 예조판서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이후원 우의정 제수
몰년 시기/일시 1660년연표보기 - 이후원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85년연표보기 - 이후원 수곡서원 배향
사당|배향지 이후원 배향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곡서원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全州)
대표 관직 총융사|승지|대사간|도승지|예조 판서|우의정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이다. 광평 대군의 7세손으로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욱(李郁)이며, 어머니는 판서 황정욱(黃廷彧)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598년(선조 31)에 출생하여 1660년(현종 1)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623년(인조 1) 인조반정(仁祖反正)에 공을 세워 정사공신(靖社功臣)에 책봉되고 완남군(完南君)에 봉해졌다. 1624년 이괄(李适)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丁卯胡亂)을 잘 마무리하는데 공을 세웠고, 정묘호란 때에는 총융사로 변란에 임했다. 1635년 익산 군수로 나갔을 때 증광문과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것을 주장했고, 척화론을 앞장서 주장하였다. 내직으로는 1639년에 승지, 1642년에 대사간(大司諫), 1645년에 대사헌, 1653년에 도승지(都承旨), 1655년에 예조판서가 되었다. 그리고 형조·공조·이조의 판서 등 요직을 거쳐 1657년에는 우의정(右議政)에 올랐고, 외직으로는 충청도관찰사·강화유수를 지내면서 백성들을 보살폈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 송시열(宋時烈)송준길(宋浚吉) 등의 인재를 등용하는 데 앞장섰고, 북벌론(北伐論)에도 적극 참가하여 북벌계획을 수립하기도 하였다.

[묘소]

묘소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산 10-1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된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85년(숙종 11) 경기도 광주(廣州),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었던 수곡서원(秀谷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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