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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과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451
한자 僧科坪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552년연표보기 - 승과평 건립
폐지 시기/일시 1566년연표보기 - 승과평 폐지
소재지 승과평 -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코엑스 일대지도보기
성격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던 조선시대 승과(僧科)를 실시했던 뜰.

[개설]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벌판으로서, 오늘날 봉은사 앞 지금의 종합전시장 일대에 해당된다. 이곳에서 조선 명종 때 승려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를 실시하였던 데서 유래되었으며, ‘중의벌’이라고도 하였다. 조선 명종 7년(1552) 4월에 봉은사 주지 허응당(虛應堂) 보우선사(普雨禪師)[1516~1565]가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신임을 얻어, 고려 때 있다가 조선에 들어와서 없어진 승과(僧科)를 다시 설치하였다. 그 해 8월에 승과를 보이는데, 시험에 응한 중이 수천 명에 달하므로, 봉은사 앞 벌판을 과장으로 사용하였고 이때 400명을 뽑아 도첩을 주었다. 여기서 ‘승과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544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실권을 쥐게 된다. 평소 불교를 신봉하던 문정왕후보우를 등용하여 침체된 불교의 중흥을 꾀하는데, 봉은사가 바로 그 중심에 있게 된다. 문정왕후는 명종 5년(1550) 12월 우의정 상진(尙震)에게 중종 2년(1507)에 폐지되었던 선종과 교종의 부활을 명하였다. 이에 따라 봉은사는 선종을 총괄하는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이 되고 봉선사가 교종수사찰이 되었다. 그리고 보우는 판선종사(判禪宗事) 도대선사봉은사주지(都大禪師奉恩寺住持)라는 직함을 받고 봉은사를 중심으로 불교 중흥에 앞장서게 된다.

문정왕후보우의 건의에 따라 승과를 실시하게 되었다. 승과는 명종 7년 봉은사 앞 벌판에서 첫 시험을 치룬 이래 명종 21년(1566) 혁파될 때까지 3년마다 한 차례씩 실시되었다. 명종 때 실시된 승과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 휴정송운대사 사명당 유정 등 많은 승려를 배출하였다. 율곡 이이는 승과의 치폐과정에 대해 그의 『경연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보우가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실시하여 중들과 여염집 사람들의 공경을 받아 그 소문이 대궐까지 나자 위로 문정왕후를 속여 세력을 얻어서 세상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여 불공을 크게 벌이는 한편 양종(兩宗) 승과를 설치하였다. 보우가 도를 통하였다고 스스로 칭하며 대궐 안에 거처하였다. 문정왕후가 세상을 뜬 후에 조정과 유생들이 죄주기를 계속 상소함에 제주도로 귀양 가서 죽었으나, 양종 승과만은 폐지되지 않다가 명종 21년 4월에 양사의 계청(啓請)으로 폐지되었다.”

[위치]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 남쪽 앞으로 지금의 종합전시장 일대에 해당된다.

[현황]

봉은사 남쪽 들판에 한국종합전시장(COEX)한국종합무역센터 등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강남의 문화중심지가 되고 있다. 승과평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고자 부처님 오신 날에는 승과평 일대에 연등이 켜진다.

[의의와 평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승과를 부활하여 조선 불교의 중흥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나아가 서산대사송운대사 등 고승을 배출함으로써 임진왜란 때 국운을 지키는 승병활동이 가능하였다. 이렇게 조선 시대 최고의 불교 중흥기를 열고 조선 후기 법맥을 계승하게 된 계기를 이룬 상징적인 장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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