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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26
한자 義兵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전우용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과 그 일대에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활동했거나 이 지역에서 출생한 의병.

[개설]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국가의 지시나 징발에 의하지 않고 민중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군대, 또는 그 군대의 병사를 의병(義兵)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의 역사는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려 말 대몽항쟁기의 의병과 조선 중엽 임진왜란 때의 의병, 그리고 개항 이후 일본의 한국 강점 무렵까지 몇 차례에 걸쳐 봉기한 의병이 혁혁한 업적을 남겼다.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포함하는 경기도 광주군은 을미의병과 정미의병의 주요 활동 무대 중 하나였다. 을미의병은 1895년 명성 황후 시해사건과 뒤이은 단발령(斷髮令)에 분격한 유생(儒生)들의 주도 하에 일어난 항일 의병이었다. 전국 각지의 유생들이 국모의 원수를 갚고 도학(道學)을 지키기 위해 창의소(倡義所)를 설치하였다. 충청도에서는 유인석(柳麟錫), 문석봉(文錫鳳) 등이, 경상도에서는 곽종석(郭鍾錫), 허위(許蔿) 등이, 전라도에서는 기우만(奇宇萬) 등이, 강원도에서는 이소응(李昭應) 등이, 경기도에서는 박준영(朴準英), 김하락(金河洛) 등이 거병(擧兵)하였다. 박준영과 김하락 등이 이끄는 경기의병은 이천, 양근, 지평, 광주, 안성, 음죽 등에서 의병을 모아 경군(京軍)과 전투에 돌입하였다. 광주 지역에서는 1895년 12월의 광주 노루목[獐項] 전투와 이듬해 정월의 남한산성 전투가 치열하였다. 의병은 한때 남한산성을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렸으나 곧 패퇴하였다. 그 후에도 경기의병의 일부는 경상도 지역으로 옮겨가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1896년 아관파천으로 친일 개화파 내각이 붕괴하자 자진 해산하였다.

을사의병은 1905년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항일 의병이다. 을사의병은 을미의병과 달리 평민들의 주도적 참여가 두드러졌다. 을사의병 역시 경기, 강원, 충청, 경상, 전라 등 전도에서 일어났으며, 경기도에서는 죽산, 안성의 박석여(朴昔汝), 양평, 여주의 이범주(李範疇) 의병부대가 거병(擧兵)하였다. 그런데 경기도 광주 지역에는 을사의병과 관련된 자취가 남아 있지 않다.

1907년 정미의병은 군대 해산 이후 해산군인과 평민들이 주도한 의병이다. 경기도 광주군에서는 김봉기(金奉基) 의병부대 등이 활동했는데, 이들 부대에는 현재의 강남구에 해당하는 언주면, 대왕면 출신 의병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일본군과 전투를 치르는 한편, 군자금을 모집했는데 그 과정에서 다수의 의병이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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