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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여도』 「광주부」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280
한자 廣輿圖廣州府
분야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문헌/문서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소현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9세기 전반 - 『광여도(廣輿圖)』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 103동
성격 전적
발급자 제작자 미상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의 모습을 그린 조선 후기 지도.

[개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전국 군현 지도집은 『광여도』·『해동지도(海東地圖)』·『여지도(輿地圖)』·『여지편람(輿地便覽)』 등이 있다. 1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광여도』는 사찬(私撰)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처럼 18세기 전반의 사정이 반영되어 있고, 상당수 군현 지도의 윤곽도 비슷하다. 『광여도』『해동지도』와 다른 점은 안음현(安陰縣)이 수록되었다는 점과 마테오리치의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 계열의 지도가 『천하도(天下圖)』라는 이름으로 실려 있는 점 등이다. 『광여도』「광주부」 지도에는 관아 건물이 있는 남한산성의 성곽과 건물을 상세하게 표현하고, 주변의 산천이 묘사되었으며 지역별로 중요하게 인식된 장소들이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지도 편찬 역사에서 합리적 윤곽을 가진 기호식 지도집을 활용하게 되면서 영조대 말부터 기호식 지도집의 편찬 흐름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영조대 중반부터 계속되던 관찬(官撰)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집 편찬의 전통은 19세기에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 공적 통치력이 급속히 이완되었던 19세기의 정치적 환경과 맞물리면서 관에서 편찬해왔던 회화식 군현 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회화식 전국 군현 지도집인『광여도』가 만들어졌으나 제작자는 불분명하다.

[형태]

『광여도』는 36.8×28.6㎝ 규모의 7책으로 구성되었다. 구체적으로 경기도[1책]·충청도[2책]·전라도[3책]·경상좌도[4책]·경상우도[5책]·평안도[6책]·황해도[6책]·강원도[7책]·함경도[7책] 등의 도 지도와 군현 지도, 주요 군사 요충지의 지도가 실려 있다. 제1책 경기도에 수록된 『광여도』「광주부」 지도는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포함하고 있으며, 서쪽을 위로 하여 1장으로 그려진 채색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광주부는 남종면을 제외한 광주군 전체와 남양주시 와부면·조안면, 성남시, 하남시, 서울특별시 강남의 경부고속도로 동쪽, 의왕시, 안산시 성포동 동남쪽, 화성군 매송면의 서쪽에 해당하는 아주 큰 고을이었다. 성관면(聲串面), 북방면(北方面), 송동면(松洞面)은 한강과는 관계가 없는 지금의 시화호 안쪽에 해당되는 곳으로서 안산과 남양에 인접해 있었다. 기타 읍치 아래쪽의 경안역(慶安驛)은 지금 광주읍이 있는 곳으로서 7개의 속역(屬驛)을 거느린 찰방역(察訪驛)이었다. 읍치는 원래 하남시의 교산동 일대에 있었으나 1626년(인조 4)에 광주군 중부면 남한산성으로 옮겼다. 따라서 남한산성은 옹성과 암문(暗門)까지 표현했으며, 안쪽에는 관아 건물을 자세히 그려 넣었다.

지도에서 특이한 것 중 하나는 주막(酒幕)이 많이 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민간 숙박업소가 번영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작은 저수지에 해당하는 ‘언(堰)’이라는 글자가 자주 보이고 있어 조선 후기에 수리시설이 확충되고 있는 모습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가물 때 비가 오기를 빌면서 제사를 지내던 기우제단(祈雨祭壇)도 돌마면과 실촌면에 두 군데가 표시되어 있다.

지도 위쪽으로 한강이 고을 동쪽에서 들어와 북쪽을 휘감고 서쪽으로 빠져나가게 표현되었으며, 강변에는 여울(灘)과 송파진(松波津), 삼전도(三田渡) 등의 나루가 표시되었다. 지도에 수십 기의 무덤이 표시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특히 강남구 지역에는 태종의 능인 헌릉(獻陵), 성종의 능인 선릉(宣陵), 중종의 능인 정릉(靖陵)을 비롯하여 공주, 군(君) 등 왕실의 묘가 가장 많다. 지도에 표기된 양재역은, 조선 후기 간선 도로로써 서울에서 양재역~율현점~낙생역~용인을 통과하여 통영까지 이르는 중로(中路) 상에 있었다.

[의의와 평가]

『광여도』에는 도로는 표시되어 있지 않고, 주요 교통로에 있는 역원과 고개 등이 표시되어 있다. 특히 함경도 지도에는 고개, 비탈, 덕 등 한글 표현이 등장하고 있다. 형식면에서 보이는 진전된 측면은 지도와 설명문이 분리되었다는 점이다. 도면과 별도로 작성된 설명문에는 호구, 전결, 부세, 군정 등 군현의 사회·경제적 사정을 알려주는 항목들이 설명되어서 『해동지도』 등 다른 군현 지도집의 도면 및 설명문과 대조하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광여도』 「광주부」 지도는 조선 시대 산수화풍으로 표현되어서 지역을 대표하는 산이 강조되었으며, 방안식 지도에 비해서 상징적인 건물들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실제감을 준다. 또한 주요 물줄기가 표현되어서 산천(山川)과 정주지의 관련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지도 왼편 위쪽에 ‘땅은 광주에 속하지만 백성은 한성부에 속한다’라는 흥미로운 내용이 적혀 있다.

[참고문헌]
  • 한영우·안휘준·배우성, 『우리 옛지도와 그 아름다움』(효형출판, 2000)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 네이버 백과사전(http://ter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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