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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052
한자 狎鷗亭-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소현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조선시대 - 압구정에서 풍류를 즐기며 배를 띄우던 나루
폐지 시기/일시 1973년 - 압구정나루터 영동대교 건설로 나루 기능 상실
비정 지역 압구정나루터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지도보기

[정의]

조선 시대 압구정한강변에서 금호동 무수막나루로 건너는 곳에 있었던 강남구 압구정동 소재의 나루터.

[개설]

조선 시대에 강남구 압구정동 한강변에는 맞은 편 금호동에 있던 무수막나루로 건너기 위한 압구정나루가 있었다. 무수막나루는 선철을 녹여 무쇠솥, 농기구 등을 주조해서 국가에 바치거나 시장에 내다파는 사람들과 대장간이 많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수철리(水鐵里)나루라고도 불렀다.

[명칭 유래]

압구정나루는 뒤편에 조선 시대 세조 때 권신 한명회(韓明澮)[1415~1487]가 지은 압구정(狎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이름이다. ‘압구(狎鷗)’는 한명회의 호인데, 송(宋)나라 재상이었던 한기(韓琦)가 만년에 정계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면서 그의 서재 이름을 압구정이라고 했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압구정에서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도 하였으며, 압구정의 배 띄우기는 경도승경(京都勝景) 중의 하나였다.

[형성 및 변천]

압구정동·청담동·신사동 앞쪽의 한강은 성동구 쪽 한강과 비교하여 벼랑이 없고 수심이 얕으며 물살이 세지 않아서 어종이 다양했다. 붕어·숭어·은어·게·쏘가리·뱀장어·바가사리·모래무지·피라미·동자개 등과 우렁이·다슬기·달팽이·말조개·칼조개·재첩 등의 조개류가 서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압구정 앞쪽 한강변은 민물 게 산지로 유명하였다.

압구정나루는 조선 시대에 강폭이 넓어서 호수와 같다고 동호(東湖)라고 불린 곳의 남쪽 낭떠러지 언덕 밑에 있었다. 동호 일대에 독서당(讀書堂)과 저자도·입석포(立石浦)·제천정(濟川亭)·압구정 등의 공간이 포함된다. 1970년대 공유수면매립공사를 통해서 저자도의 모래와 자갈을 파내어 지대를 높이고 한강제방을 쌓으면서 압구정 터가 사라졌으며, 압구정나루는 1973년 영동대교가 완공되면서 청담나루와 함께 사라졌다. 현재 압구정나루의 자리에 있는 한강 다리는 동호대교이다. 압구정옥수동 일대 한강을 일컫던 ‘동호’라는 이름을 붙인 동호대교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한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압구정나루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며, 압구정나루 인근 벼랑 위에 있던 압구정의 위치는 압구정1동 456 일대이다. 현대아파트 72동과 74동 사이에 압구정 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관련 기록]

정선은 한양팔경의 하나였던 압구정과 앞쪽 한강의 전경을 그렸는데, 「압구정도」에는 강변에 정착한 배가 그려져서 압구정나루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다. 그밖에 압구정나루와 관련된 내용은 향토지 성격을 가지는 『강남구지』·『강남의 향토문화 기행』·『강남구 향토지』 등의 현대 자료에 수록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2.05 참고문헌 일부 삭제 강남구 e행정자료도서관(http://ebookroom.gangnam.go.kr/)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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